대체 무엇에 대해 어떻게 맞서라는건가?

자본주의에 맞서라: 상처받지 않을 권리


애초에 철학에는 딱히 관심도 없었기에 강신주가 누군지도 몰랐다. 이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얼마 전 이글루스에서도 폭풍같은 까임을 당한 칼럼이었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괴물, 냉장고" 라는 글에서였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7212131165&code=990100)

저 칼럼을 읽고 정말 배를 잡고 웃었는데 최근 이 분이 강의하면서 더 재미있는 말을 했다더라. 

하나하나가 병맛가득넘치고 웃겨서 깔게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당장 태클 걸고 싶은 거 몇가지만 걸어보자.




여러분들은 돈이나 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을 아차 하는 순간에 잃어버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나요아마도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경험을 해보았을 겁니다그런데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여러분들은 단순히 돈 얼마가 없어졌다는 불편함보다는 무엇인가 그 이상으로 몹시 초조하거나 쫓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이러한 느낌은 과거에 돈 때문에 만들어진 트라우마와 관련된 무의식적인 기억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요어린시절 어머니가 무엇인가를 사라고 여러분들에게 쥐어 주었던 적이 있을겁니다그런데 여러분들은 뜻하지 않게 그 돈을 잃어버리게 된것이지요그때 만약 어머니가 여러분들을 심하게 야단쳤다면돈의 상실과 연결된 불안감은 어린 여러분에게 강한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것입니다성인이 된 어느날 우연히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여러분이 느낀 초조함과 불안감 역시 어린 시적의 상처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각인된 자본주의의 첫 번째 상처를 확인하게 됩니다.


→ 아이가 돈을 잃어버려 부모가 야단치는 것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겨 커서 지갑분실시 초조감을 느끼는 게 대체 어째서 자본주의에 의한 트라우마인지 도무지 모르겠다인간이 자기 물건을 잃어버려 초조해 하는 건 당연한 심리적 현상일 뿐이지 트라우마가 뭐고 자본주의적 상처가 대체 뭔가? 첫돌지난 아기도 평소에 끼고 자던 담요가 없어지면 빽빽 울면서 불안해 한다. 이것도 자본주의의 상처 때문인가아기뿐 아니라 똥개도 평소에 가지고 놀던 공이 없어지면 우왕좌왕한다아기나 똥개도 자본주의의 불합리성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느낀건가?  참 놀라운발상이군.







자본주의는 상품을 가진 사람보다는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 우월함을 보장하는 체제입니다노동력이란 상품만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가 자본가보다 열등한 지위에 있게 되는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그렇지만 월급을 받아 소비자가 되는 너무나도 짧은 한 순간상황은 180도 달라집니다우리가 돈을 가지고 있고 자본가가 상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이 순간 우리는 자유롭게 됩니다돈을 쓸 수도 있고 쓰지 않아도 되고구두를 살 수도 있고 아니면 핸드폰을 살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그렇지만 자본가는 우리의 이런 자유와 우월함을 견딜 수 가 없습니다바로 돈을 회수해서 잉여가치를 얻어야하니까 말이죠자본가가 다양한 유혹의 기술을 개발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자신의 우월성을 보장해주는 돈을 강제로 뺏을 수 없다면 남은 길은 자발적으로 소비하도록 유혹하는 방법 밖에 없을겁니다어두운 밤바다에서 오징어를 잡는 집어등(集魚燈)처럼 화려하기만 한 소비문화는 바로 이로부터 기원했던 겁니다.



→ 강신주는 무슨 '자본가' 라는 프리메이슨급 집단이 '소비자(혹은 노동자)' 라는 허약한 집단을 상대로 대단한 음모를 꾸미고 그들을 끝없이 소비의 길로 이끌어 타락시키려는 걸로 착각하는듯자본가가 물건을 팔려는 이유는 그저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겨 기업을 유지하고 직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이이득을 챙기기 위해서일 뿐이다. 거창한 이유따윈 없음. 그리고 그 이득을 위해서는 같은 자본가끼리도 공격하고 공격당하며 망하기도 한다. 블랙베리나 팬택만 봐도 답이 나오잖아?

아이폰을남기고 세상을 떠난 잡스도, 옥션에서 물건 올리며 홍보하는 사장님도,모란시장에서 똥개 파는 할머니도, 게임을 만드는 게임제작사들도 크게 보면 '자본가'인 셈인데 이들도 소비자(노동자)가 재화를 가짐으로서 누리는 자유와 우월함을 도저히 견딜수 없었던 건가? 얼마전 내 친구 한놈도 인터넷 쇼핑몰 하나 만들어서 장사하더라. 그럼 걔도 소비자의 자유로움과 우월함에분기탱천하여 그들이 가진 재화를 소비시켜 아서스처럼 타락시키려는 리치왕같은 존재인건가? 오게 두어라. 소비자들이 굶주렸다!!!








소비자로서 상품을 고를 때 우리는 자유롭다는 환상혹은 자유롭다는 쾌감을 갖게 됩니다무엇이든지 자기 원하는 것을 구매할 수 있으니 말이지요달콤한 점원의 사탕발림은 우리의 쾌감에 대한 보너스로 치고요그러나 상품을 구매하자마자 우리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자유의 느낌이 돈과 함께 소리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바로 이 소비의 자유라는 치명적인 기억이 자본주의가 우리 내면에 각인시킨 두 번째 상처입니다단지 소비의 자유에 불과한 자유에 대한 동경은 물론 화폐에 대한 동경에 다름 아닙니다돈이 있어야 소비의 자유는 가능하기 때문이죠이제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각인시킨 돈에 대한 상처위에 소비의 자유에 대한 상처가 덧씌워져 버린 셈입니다안타까운 것은 우리들 대부분은 자본주의로부터 받은 상처가 상처인 것도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이성복 시인의 말처럼 일상적 삶은 느낌에서 사실,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기 때문이지요제가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출간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너무 익숙해져 안전한 사실이 되어버린 상처를 다시 상기시키고 싶었습니다그래서 자본주의가 우리 삶에 상처를 주었던 순간그 생생한 위험한 느낌의 순간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었던 겁니다상처가 상처인 줄 모른다면상처는 더 곪아 우리의 소중한 삶마저 집어삼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상품을 구매하자마자 돈의 상실로 인해 자유의 느낌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것이 어째서 자본주의 탓인지 역시 모르겠다. 제대로 설명조차 없네. 그러한 소비 속에서 상처를 받거나 허탈함을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건 자본주의의 문제라기보다는 개개인의 성향일 뿐 아닐까? 1000원짜리 물건을 1010원에 샀다고 궁시렁대는 뽐거지도 있는 반면 원가는 300원도 안할 커피를 스타벅스에서 5000원에 사 마시면서 뉴요커라고 뿌듯해 하는 김치녀도 있기 마련이다. 미디어워치 같은 듣보잡 주간지 정기구독 신청한 거 인증하고 애국보수라고 후빨받으며 만족감느끼는 일베충도 있고 봉하쌀을 구입하고 노무현 냄새가 난다며 눈물흘리며 페티쉬 느끼는 노슬람 신도들도 있다. 상품구매 후 소비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100이면 100다르고 그에 따라 상실감을 느끼는지 만족감을 느끼는지도 역시 다르다. 상품 구매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면 자본주의 탓을 하기보다는 본인의 과소비 성향이나 좋은 상품을 구입할 능력이 없는 안목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고진이 제안한 생산-소비협동조합은 자본주의에 익숙해져있는 분들에게 견디기 힘든 삶의 양식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반자본주의적 생활공동체는 소비문화가 제공하는 화려함이나 모던함과는 거리가 먼 공동체이니까요백화점도 CGV도 스타벅스도 없을겁니다만약 공동체의 다른 성원이 경작한 것을 혹은 만든 것을 가지고 싶다면여러분들은 자신이 경작한 것이나만든 것을 제공하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아두었던 것을 그에게 주어야 할 겁니다물론 여러분들에게 당장 받을 것이 없다면 그는 나중에 수확하게 될 딸기를 달라고도 말할 수도 있지요공연을 보고 싶다면공동체의 다른 성원들이 틈틈이 연습해서 공연하는 연극을 모닥불 옆에서 보아야할 것입니다물론 여러분은 나중에 근사한 기타 독주회를 준비하거나 아니면 고구마를 삶아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차를 마시고 싶다면 차를 기르는 분에게 방금 수확한 옥수수를 가지고 가야 되겠지요물론 옥수수는 나중에 주어도 되지요이곳에서는 자본가나 노동자라는 계급 관계도 허구적인 소비의 자유도 없습니다자유롭게 생산하는 개인들의 연대만이 있을 뿐입니다.



→ 그 처방전이란 것도 실로 우습기 짝이 없는데(애초에 진단 자체가 코미디니…) 결국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것(...) CGV에서 영화를 보는 대신 모닥불에서 서로가 연습한 연극을 보고 기타 독주회를 하고 서로가 재배한 농작물을 교환하고 수확을 거들어주고...KIA~ 감성돋는구마잉~

그런데... 그 공연에 필요한 악기는 어디서 구하나? 손재주가 뛰어나지 않는 한 더러운 자본가가 만들어 파는 걸 돈주고 구입할 수 밖에 없다. 난 딸기를 재배하는데 상대방은 딸기를 싫어하면 어떻게 서로가 원하는 것을 교환하나? 게다가 커피 외에 다른 차는 그다지 안 좋아하는데 상대방은 녹차밭만 심었다면? 아니 애초에 원두는 국내재배가 거의 불가능하다(웃음). 뭐 더러운 자본주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깟 커피 정도 안마시면 어떤가. 몸에 좋은 녹차를 마셔야지.

‘자유롭게 생산하는 개인들의 연대만이 있다’ 라고 주장하는데 대체 ‘자유롭게 생산’ 이라는 범위는 어디까지라는 건지도 의문이다. 사람들이란 아무래도 재배하기 힘든 작물이나 만들기 힘든 생산품보다는 상대적으로 생산하기 편하고 가치있는 작물이나 생산품을 더 원할 것이다. ‘자유롭게 생산’ 하도록 놔두면 결국 수급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저 철학자가 주장하는 원시적 물물교환은 그 효용성을 상실할 건 불보듯 뻔할텐데… 그렇게 되면 그 공동체는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결국 누군가가 나서서 개인의 생산량과 생산품목을 컨트롤해야 하고 개인이 따르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할 장치가 등장하고... 이미 이 시점에서 자유롭게 생산하는 개인들은 물건너 간 거다. 뭐 이미 역사적으로도 훌륭한 사례가 있긴 하다. 소비에트 공화국라고(웃음)

아니 애초에 물물교환의 불합리성으로 인해 시장경제가 발전했다는 건 중학교 때 배우는 거 아닌가?







자본주의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하는 건 좋다. 그런데 그 고민이나 비판이라는 것도 좀 제대로 된 사고방식과 고찰을 통해 나왔으면 좋겠다. 뜬금없이 냉장고를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없애야 한다느니, 지갑을 잃어버려 초조해 하는 걸 자본주의의 상처라느니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뜬금없는 소리만 하면 누가 공감하겠나. 게다가 그 대안이란 게 결국 자급자족과 물물교환이라니 이건 뭐(....) 

감수성 충만한 얼치기 좌파들이야 좋아할 만한 글이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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